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헨리 키신저 (문단 편집) == 개요 == >'''America has no permanent friends or enemies, only interests.''' >'''[[미국]]에게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다. 오직 국익만이 존재할 뿐이다.''' >---- >영국 총리였던 [[헨리 존 템플]]의 격언을 변형하여 남긴 어록 [[미국]]의 전(前) 국제정치학자, 외교관, 행정가. 도덕성에 구애받지 않는 정치현실주의 정책으로 전세계적으로 큰 비난과 호평을 동시에 받는다. [[즈비그니에프 브레진스키]], [[브렌트 스코크로프트]]와 더불어 냉전 시기 미국의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역임자들 가운데 3대 거장 중 하나로도 흔히 알려져있다.[* 국무장관을 비롯한 일반 외교관으로는 [[조지 케넌]], [[존 포스터 덜레스]], [[딘 러스크]] 등도 유명한 인물들로 꼽힌다.] 그중에서도 인지도는 키신저가 가장 높다.[* 그러나 근래의 평가는, 비록 학자별로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인지도와 반대로 스코크로프트 > 브레진스키 > 키신저 순이다. 키신저는 각종 전쟁범죄와 근시안적인 외교술로 매우 혹평받으며, 브레진스키는 자신의 재직 시절인 카터 행정부의 유약함뿐만 아니라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개인적인 반러 감정 때문에 탈레반을 비롯한 무자헤딘 세력을 불필요하게 키웠다는 비판이 대두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브렌트 스코크로프트는 아버지 부시 행정부 시절 걸프전 승리와 냉전 종식이라는 가시적인 성과, 현실주의 외교에 입각하면서도 이라크 개입의 위험성을 사전에 경고하는 등의 행보가 재발굴되며 미국이 국제 외교의 수렁에 빠지면 빠질수록 오히려 더 고평가받는 아이러니한 추세를 보이고 있다.] 대표적 정치현실주의자이자 [[보수주의]] 정치인으로 [[리처드 닉슨]], [[제럴드 포드]] 정부 시절 중요 관료였으며, 호불호와 상관없이 1970년대 미국의 외교 정책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했었던 인물이다. 그는 정의나 감정에 치우친 판단보다는 미국의 국익을 위한 판단을 내렸지만, 이로 인하여 부정적 결과[* 대표적으로 피노체트 정권 지원으로 인한 대량학살]가 초래되기도 하였다. 특히 정치현실주의로 어떠한 이념에 얽매이지 않는 성향[* 대표적으로 데탕트 시대의 개막으로 인하여 보수주의자들에게는 친중으로, 진보주의자들에게는 신자유주의 독재정권인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정권 지원으로 인한 극우로 몰려서 비판받는다. 전부 도덕적 판단보다는 미국의 국익을 우선시하여 결정한 판단이다.]으로 인하여 정통 보수주의자와 대안우파,[* 특히 대안우파 내에서는 거의 원수취급을 받고 있는데 대안우파 만평가로 유명한 벤 개리슨의 경우 헨리 키신저를 데탕트를 실행시켜 공산권을 살려준 미국 역사상 최악의 빨갱이들 중 하나이자 만악의 근원으로 여기고 있다. 거의 [[버니 샌더스]]와 함께 대안우파의 주적들 중 하나로 여겨질 정도. 아무래도 헨리 키신저 자체가 강경한 보수이기보다는 당장의 이익을 추구하는 성향으로 유연한 편이기에 강경 보수인 대안우파와 전혀 맞지 않고, 헨리 키신저는 기본적으로 고전 보수주의에 틀을 두고 있기 때문에 역시 대안우파와 적대적일 수밖에 없다. 결정적으로 키신저는 신자유주의자인데, 대안우파의 핵심 이념 중 하나가 반 세계화, 반 외세개입, 반 신자유주의다. 그야말로 보수 진영 내에서는 대안우파의 정반대에 서있는 인물인 셈이었다.] 진보주의자 모두에게 비판받았다. 1973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이지만, 그의 현실주의적이고 반 인도주의적인 행보로 인하여 '노벨평화상'의 취지에 걸맞지 않게 가장 크게 비판받는 수상 중 하나로 언급되는 편이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 밑에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대한민국]]의 [[국가안보실장]]에 해당)과 [[국무장관]]을 지낸 사람이다. 이 두 자리는 보통 서로 다른 관료들이 맡게 되어 있지만, 키신저는 이 둘을 자기가 번갈아 맡게 됐다. 1973~1975년에는 두 직책을 혼자 겸임하기도 했다. 쉽게 말해 '''당시 [[미국]] 외교 정책의 전권자'''였던 인물이다. 닉슨 행정부 시기, [[미국|미]]-[[소련|소]] '전략무기 제한협정'(SALT), [[중국]]과의 관계 개선 등을 통해 공산 진영과의 [[데탕트]](Detente : 긴장완화)를 성사시킨 주역으로 유명하다. [[한스 모겐소]]나 [[케네스 월츠]]와 같은 대가는 아니었지만 수준급의 학자였고, 그런 실력을 바탕으로 현실 국제정치에서 역사에 남을 업적을 달성했다. [[조지 워커 부시|부시]] 행정부에서 같은 코스(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 국무장관)를 걸었던 [[콘돌리자 라이스]]의 선배격이다. [[칠레]]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정권 지원 문제에 관한 것 때문에 거센 비판을 받는 사람이다. 키신저의 악행이 '''[[세계기록유산]]에 공식적으로 등재되기까지 할 정도이기 때문에'''(그것도 한두 개가 아니다.)[* 파라과이 : 공포의 문서, 칠레 인권 문헌 자료, 아르헨티나 인권자료집 1976-1983; 브라질 군사 정권의 정보 및 반정보 네트워크 기록물군.] [[크리스토퍼 히친스]]는 키신저를 [[냉전]]기 미국이 저지른 온갖 더러운 행위의 배후로 지목하며, 그를 전쟁 범죄자로서 국제법정에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 그가 [[노벨평화상]] 수상자라는 게 아이러니이기도 한데, 노벨평화상 수상자 가운데는 역설적으로 국제법정에 서야 할 자들도 많다. 죽어라 싸우다 화해했다고 주는 상도 꽤 되고. 노벨평화상의 경우 정말 평화나 인간의 존엄성을 위해 노력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정치적 행적에 의해 수여되는 경우도 많다. 사실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정치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생각하면 말이 되지만 요컨대, 수만 명이 죽는 전장에서 수백 명을 구해낸 사람에게 줄 수도 있지만, 전쟁질 해서 수만 명을 죽이다가 전쟁 그만둔 사람에게 수십만 명 안 죽였으니 참 잘했다고 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기존의 [[베트남 전쟁]]이 이미 [[프랑스]]에서 평화 협상 진행 중이었음에도, 공산주의 세력 억제와 키신저 개인의 권력 획득 및 유지라는 이유로 당시 대통령 후보인 닉슨과 개인적인 줄다리기를 하면서 [[남베트남]](월남)에 미국의 지원을 다짐시켜주어 전쟁을 2차전으로 끌어들여 수많은 전쟁사상자를 냈다는 것이다. 또한, 그 후의 평화협상 내용은 기존 전쟁의 평화협상 내용과 거의 비슷하다고 그의 전직 동료들이 확인시켜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